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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밭담과 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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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밭 사이에 경계가 없어서 힘센 자들이 날로 약한 자의 토지를 잠식하기에, 김구가 지역민들의 고충을 듣고서 돌을 모아 담을 쌓고 경계선을 구분 지으니, 지역민들이 편하였다.”
‘탐라지’에 나온 내용으로 제주 섬에 처음 돌을 이용해 밭의 경계를 표시하려고 밭담을 쌓았다는 문헌 기록이다. 김구는 고려시대인 1234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사람이니 이 기록대로라면 제주밭담은 1234년부터 형성된 셈이다.
그러나 제주의 밭담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쌓아져 왔다. 돌담에 경계선의 의미가 하나 더 얹히게 된 것은 1234년부터일 수도 있겠지만, 밭에서 골라낸 돌들이 자연스럽게 담을 이루고, 흙과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을 걸러낼 돌담을 쌓아 두르는 일은 농경문화와 더불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 경계는 둘째 치고, 씨앗을 하나라도 더 심기 위해 밭의 돌들을 골라내야 했고, 그 씨앗을 덮은 흙을 날리지 않게 하기위해 바람을 막아야 했다. 밭의 돌담은 바람으로부터 흙과 씨앗을 보호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밭담 역시 직선이 아닌 곡선이 되게 쌓았고, 특히 바람이 많은 해안지역일수록 높게 쌓아 흙이 바람에 날라지 않도록 했다.
제주 섬에는 대규모의 농경지가 없다. ‘돌랭이’라는 작은 밭들로 조개어진 채 잇따라 붙어있다. 바람을 막아내며 생선에서 뼈를 발라내듯 귀한 흙을 추슬러 농사를 지어야 했던 제주 섬의 자연환경이 소규모의 밭 형태를 이루게 했던 것이다.
밭돌담 중에는 작은 성곽처럼 특이한 돌담이 있다. ‘잣길’이라 부르는 이 돌담은 사람이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넓이로 쌓아져 밭과 밭을 연결해주는 통로구실을 한다. 다른 지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제주만의 농로인 셈인데,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고자 하는 제주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밭과 밭 사이에 있거나, 길이 없는 밭의 경작지가 길 삼아 다니라고, “이 길로 해서 안의 밭도 농사를 같이 지읍시다”하는 뜻이 담긴 유용하고 따뜻한 돌담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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