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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만남의 길목,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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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섬의 모든 만남은 포구에서 비롯되었다. 포구는 바다와 만났고 바다는 포구와 만났다.
제주의 포구는 제주선조들이 대륙과 교통하는 곳이었으며, 유형인들이 오고가는 길목이었고, 표류하던 외국선박들이 기착하는 곳이었다.
제주선민들이 대륙과 교통을 위해 이용한 포구로는 북쪽 해안가의 자연포구인 화북포와 산지포, 조천포, 애월포 등이 있다.
제주도내 항만이 관에 의해 축조되는 기록에는 1735년 김정 목사 때인 것으로 나타난다. 김정 목사는 화북포와 산지포를 축조하기 위해 관록(官祿) 3백 석을 희사하고, 전 도민을 부역에 동원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 역시 함께 일하다가 화북에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제주 섬에는 천연포구가 매우 드물었다. 섬 사방을 두르고 있는 2백2킬로미터의 해안선이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제주의 갯마을 사람들은 자연적인 지형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돌덩이를 하나씩 날라다가 ‘개’ 또는 ‘개창’이라고 부르는 작은 포구를 만들었다. 포구의 버팀돌들은 어김없이, 밀물 때는 잠겨있지만 썰물 때는 그 모습을 드러내는 ‘여’라는 특이한 지형 물에 싸여져 있다. 이것을 ‘지방여’라고 부른다. 집을 지을 때 문(門)의 기초가 되는 ‘지방’의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니, 갯마을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포구는 육지의 집과 같이 삶의 보금자리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포구의 바닷속에는 좌초 등의 해난사고에 대비해 포구로 드나드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썰물 때에는 입출항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바닷길은 포구사람들의 생명줄이었다. 그런가 하면 타원형 포구를 안캐, 중캐, 밖캐로 나눠 입출항 날짜별로 배를 정박함으로써 드나듦의 혼잡을 막기도 했다.
액을 막기 위해 방사탑을 쌓고, 당신을 모셔 뱃길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 포구주변에선 으레 용천수가 솟았다. 사람들은 이를 바다에서 나는 생수라며 귀리 여겼고, 돌담을 쌓아 물통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이용했다. 밤바다를 밝혀줄 ‘도대불’이 들어섰고 갯담 어로시설물이 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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